
책상 위에 모래 한 알이 놓여 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모래 더미"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기에 한 알을 더 얹는다. 두 알이 되었다. 여전히 더미는 아니다. 이렇게 한 알씩 계속 더해 간다면, 어느 순간 그것은 '모래 더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몇 번째 모래알에서 더미가 되는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2천 년 넘게 이어져 온 고대 그리스의 사고실험, 소리테스 역설(Sorites Paradox)이다. '소리테스'는 그리스어로 '더미(heap)'를 뜻한다.
한 알로는 만들 수 없는 모순
역설의 구조는 이렇다.
- 모래알 하나는 더미가 아니다.
- 더미가 아닌 것에 모래알 하나를 더해도 여전히 더미가 아니다.
- 따라서 아무리 모래알을 더해도 더미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각 문장은 하나하나 보면 반박하기 어렵다. 특히 두 번째 전제, "모래알 하나를 더한다고 갑자기 더미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옳게 들린다. 그런데 이 전제들을 순서대로 따라가면, 우리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모래 더미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 버린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모래 더미에서 한 알씩 덜어 낸다고 생각해 보자. 한 알을 뺀다고 더미가 더미이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그렇게 계속 빼다 보면, 마지막 한 알이 남았을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더미'여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른다.
문제는 모래가 아니라 '말'에 있다
이 역설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세상에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개념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더미'가 그렇고, '많다', '크다', '대머리', '어른', '가난' 같은 말들이 모두 그렇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으면 대머리다. 그런데 한 올이 있다고 대머리가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한 올씩 늘려 가면 십만 올을 가진 사람도 대머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같은 구조다.
이런 개념들을 '모호한 개념(vague predicate)'이라고 부른다. 이 말들은 명백히 참인 영역과 명백히 거짓인 영역 사이에, 참도 거짓도 아닌 '회색 지대'를 갖고 있다.
철학자들의 대답
역설을 풀기 위한 시도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어딘가에 뚜렷한 경계가 실제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을 뿐이라는 입장이다(인식론적 견해). 예를 들어 정확히 9,999번째 모래알까지는 더미가 아니고 10,000번째부터 더미일 수도 있는데, 다만 우리 인식의 한계 때문에 그 지점을 짚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참과 거짓 사이에 '어중간한 진리값'을 인정하자는 입장이다(다치 논리, 퍼지 논리). 이 관점에서 어떤 것은 '0.7만큼 더미'일 수 있다. 참(1)과 거짓(0) 사이의 연속적인 값을 허용하는 것이다.
셋째, 애초에 경계를 정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며, 이런 말들은 원래 정확한 경계를 갖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매일 넘고 있는 경계
이 사고실험이 단지 말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회색 지대' 위에서 매일 판단을 내리며 산다.
몇 살부터 어른인가. 소득이 얼마 아래여야 지원 대상인가. 몇 점부터 합격인가. 이 모든 기준선은 사실 소리테스 역설이 말하는 그 '모호한 경계'를 사회가 편의상 한 지점에 그어 놓은 것이다. 그 선 바로 위와 바로 아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어디엔가 선을 그어야만 한다.
모래알은 언제 더미가 되는가. 어쩌면 정답은 "정해진 순간은 없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정해야 한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많은 경계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신이라면, 몇 번째 모래알에서 선을 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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