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존재가 이 순간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이 물리 법칙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이 존재는 1초 뒤에도, 100년 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당신이 무엇을 먹을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까지도.
19세기 수학자 라플라스는 이런 존재를 상상했다. 훗날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리는 이 사고실험은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정말 우리의 것인가.
결정론이라는 세계관
세상의 모든 사건이 이전 사건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결정론이라 부른다.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듯,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라온다. 이 인과의 사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결정도 결국 물리·화학적 과정의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내가 커피를 골랐다'는 것도, 사실은 그 순간까지 이어진 무수한 원인들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일 뿐이다. 다르게 선택할 여지는 애초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선택'을 느낀다
문제는 우리의 경험이 이와 정반대라는 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여러 가능성 앞에서 고민하고, 하나를 고르고, 그 결과에 책임을 느낀다. 후회하고, 다짐하고, 마음을 바꾼다. 이 생생한 자유의 감각이 그저 착각일 뿐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가 흔들린다.
특히 책임의 문제가 그렇다. 만약 모든 행동이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정당한가. 그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세 가지 대답
철학은 이 딜레마에 크게 세 갈래로 답해 왔다.
첫째, 강한 결정론이다. 자유의지는 환상이며,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자유를 느끼는 것은 단지 우리 행동의 원인을 전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자유지상론이다. 인간에게는 인과의 사슬을 끊는 진정한 자유가 있으며, 결정론이 틀렸다고 본다. 마음이나 의식은 물리 법칙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셋째, 양립가능론이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사실 충돌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유'란 인과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외부의 강요 없이 자신의 이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총구에 떠밀려 한 행동과, 스스로 원해서 한 행동은 둘 다 원인이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바꾸는가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설령 우주가 결정론적이라 해도, 실제로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완벽한 예측자는 존재할 수 없다. 계산에 필요한 정보의 양이 우주 그 자체보다 커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자역학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세계가 확률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해져 있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와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다른 것일까. 어느 쪽이든 우리는 다음 순간을 알지 못한 채, 고민하고 선택하며 나아가야 한다.
결국 남는 질문
라플라스의 악마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여기는 '선택'이라는 경험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여기까지 읽기로 한 것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 답을 모른 채로도 여전히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답을 모른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다음 선택은, 정해진 것일까 아니면 열려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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