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공개한 운전면허 적성검사·갱신 평균 대기시간은 10월 22분, 11월 29분, 12월 46분으로 연말로 갈수록 두 배 이상 길어졌습니다. 공단은 혼잡을 피해 연말 전에 방문하거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당부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겁니다. 갱신 기한은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왜 하필 많은 사람이 '연말'이라는 같은 순간에 몰릴까요.
마감이 멀리 있을 때 우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한이 코앞에 닥치면 그제서야 움직이죠. 이 글은 그 흔한 습관을 두고,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마감에 쫓겨 내린 선택은 과연 '내가' 내린 선택일까요.
▶ 우리는 왜 멀리 있는 마감을 가볍게 여길까
심리학에서는 미래의 가치를 실제보다 작게 평가하는 경향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편안함은 또렷하게 느껴지지만, 한 달 뒤의 불편함은 흐릿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직 시간 있잖아'라는 말은 게으름이라기보다, 멀리 있는 것을 작게 보는 우리 인식의 기본값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기한이 다가와 불편함이 또렷해지는 순간, 비로소 몸이 움직이는 것이죠.
▶ '마감이 시켰다'는 느낌의 정체
마감에 쫓겨 서둘러 처리하고 나면 묘한 감정이 남습니다. 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어쩐지 떠밀려서 한 것 같은 찜찜함이죠. 분명 내가 선택해 움직였는데도, 그 선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다고 말하기가 애매합니다. 조건이 나를 몰아세운 끝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을, 우리는 어디까지 '자유로운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 몰아세워진 선택과 스스로 고른 선택의 경계
같은 행동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미리 하는 것과, 벼랑 끝에서 하는 것은 질이 다릅니다. 전자는 여러 선택지를 비교한 뒤 고른 것이고, 후자는 사실상 선택지가 하나뿐인 상태에서 떠밀린 것에 가깝습니다. 자유로운 선택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지금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지가 남아 있을 때 성립하는지도 모릅니다. 마감이 그 여지를 빼앗는 순간, 선택은 결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반응에 가까워집니다.
▶ 그래도 미루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만 모든 미룸을 실패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일은 시간이 지나야 정보가 모이고, 섣불리 결정했다가 번복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판단을 위해 미루는 것'과 '불편을 피하려 미루는 것'을 우리가 자주 헷갈린다는 데 있습니다. 전자는 선택의 질을 높이지만, 후자는 선택할 여지 자체를 좁혀버립니다.
정리
연말 면허 갱신 행렬은 단순한 행정 혼잡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을 다루는 방식을 비춰 보여줍니다. 마감이 닥쳐야 움직인다면, 우리는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상황이 남겨준 단 하나의 길을 따르고 있을 뿐일까요. 오늘 미뤄둔 일 하나를 떠올려 보시죠. 그 일을 '지금 하지 않는 것' 역시 여전히 내 선택지에 남아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롭게 고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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