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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을 물리면 왜 오히려 더 늦게 올까

과태료나 벌금 이야기가 나올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돈을 물리면 사람들이 그 행동을 덜 하게 될 것이다. 처벌이 세질수록 어긴 횟수는 줄어든다는 믿음, 즉 '억지 가설'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벌금을 도입했더니 오히려 어기는 사람이 늘어난 사례가 있다면, 우리는 벌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걸까. ▶ 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일한 연구진이 여러 어린이집에서 실험을 했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 때문에 교사가 정시 이후에도 남아 있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지각하는 부모에게 소액의 벌금을 부과했다. 억지 가설대로라면 지각은 줄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벌금을 도입한 뒤 늦게 오는 부모가 오히려 더 많아졌다. 더 흥미로운 건 벌금을 폐지한 뒤에도 늘어난 지각이 원래대..

자격의 기준은 누가, 어디까지 정할 수 있을까

최근 한 세계적인 미인대회가 참가 자격을 대폭 바꿨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만 18~28세, 미혼'으로 걸려 있던 조건이 사라지고, 나이 상한이 없어졌으며 결혼·이혼·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대표로도 30대 중반의 참가자가 선발되었죠. 흥미로운 건 이 변화를 두고 '당연한 진전'이라는 반응과 '그럼 기준이 대체 무엇이냐'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대회 규정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늘 마주하는 더 큰 질문을 건드립니다. 어떤 자리에 설 자격을 누가, 어디까지 정할 수 있을까요. ▶ 자격은 '본질'인가, '약속'인가우리는 흔히 어떤 조건을 '원래 그런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대회라면 젊고 미혼이어야 한다거나, 어떤 직업에는..

카테고리 없음 2026.10.09

자격의 기준은 누가, 어디까지 정할 수 있을까

최근 한 세계적인 미인대회가 참가 자격을 대폭 바꿨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만 18~28세, 미혼'으로 걸려 있던 조건이 사라지고, 나이 상한이 없어졌으며 결혼·이혼·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대표로도 30대 중반의 참가자가 선발되었죠. 흥미로운 건 이 변화를 두고 '당연한 진전'이라는 반응과 '그럼 기준이 대체 무엇이냐'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대회 규정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늘 마주하는 더 큰 질문을 건드립니다. 어떤 자리에 설 자격을 누가, 어디까지 정할 수 있을까요. ▶ 자격은 '본질'인가, '약속'인가우리는 흔히 어떤 조건을 '원래 그런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대회라면 젊고 미혼이어야 한다거나, 어떤 직업에는..

카테고리 없음 2026.10.09

마감이 닥쳐야 움직이는 우리, 그 선택은 정말 내가 한 걸까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공개한 운전면허 적성검사·갱신 평균 대기시간은 10월 22분, 11월 29분, 12월 46분으로 연말로 갈수록 두 배 이상 길어졌습니다. 공단은 혼잡을 피해 연말 전에 방문하거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당부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겁니다. 갱신 기한은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왜 하필 많은 사람이 '연말'이라는 같은 순간에 몰릴까요.마감이 멀리 있을 때 우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한이 코앞에 닥치면 그제서야 움직이죠. 이 글은 그 흔한 습관을 두고,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마감에 쫓겨 내린 선택은 과연 '내가' 내린 선택일까요. ▶ 우리는 왜 멀리 있는 마감을 가볍게 여길까심리학에서는 미래의 가치를 실제보다 작게 평가하는 경향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편안..

기업이 언론사를 소유해도 괜찮을까

요즘 한 대형 신문사의 경영권을 두고 여러 기업이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금융, 식품, 의류, IT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회사들이 언론사를 사겠다고 나섰죠. 그런데 이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인수합병 뉴스로만 넘기기 어려운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기업이 언론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요? ▶ 언론은 왜 특별한 물건일까세상에는 사고팔 수 있는 것과 그렇게 다루면 어색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공장이나 부동산은 소유주가 바뀌어도 물건 자체의 성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다릅니다. 언론의 핵심 자산은 건물이나 윤전기가 아니라 '독자가 그 보도를 믿는다'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신뢰라는 자산은,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 쉽게 흔들립니다. 같은 기사를 쓰더라도 '누가..

카테고리 없음 2026.09.28

완벽한 예측이 가능하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어떤 존재가 이 순간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이 물리 법칙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이 존재는 1초 뒤에도, 100년 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당신이 무엇을 먹을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까지도.19세기 수학자 라플라스는 이런 존재를 상상했다. 훗날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리는 이 사고실험은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정말 우리의 것인가. 결정론이라는 세계관세상의 모든 사건이 이전 사건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결정론이라 부른다.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듯,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라온다. 이 인과의 사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우리의 뇌..

쌓인 모래는 언제부터 더미가 되는가

책상 위에 모래 한 알이 놓여 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모래 더미"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기에 한 알을 더 얹는다. 두 알이 되었다. 여전히 더미는 아니다. 이렇게 한 알씩 계속 더해 간다면, 어느 순간 그것은 '모래 더미'가 될 것이다.그렇다면 정확히 몇 번째 모래알에서 더미가 되는가.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2천 년 넘게 이어져 온 고대 그리스의 사고실험, 소리테스 역설(Sorites Paradox)이다. '소리테스'는 그리스어로 '더미(heap)'를 뜻한다. 한 알로는 만들 수 없는 모순역설의 구조는 이렇다.모래알 하나는 더미가 아니다.더미가 아닌 것에 모래알 하나를 더해도 여전히 더미가 아니다.따라서 아무리 모래알을 더해도 더미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각 문장은 하나하나 보면 반박하기 어렵다. 특..

모든 것을 알고 있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을까

메리의 방 사고실험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메리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라고 가정해 보자. 메리는 인간의 눈과 뇌가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빛의 파장부터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화학적 변화까지 모르는 것이 없다. 빨간색을 볼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이 빨간색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그런데 메리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조건이 있다. 메리는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흑백으로만 보면서 살아왔다. 빨간색이라는 개념을 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알고 있지만, 정작 빨간색을 직접 본 경험은 한 번도 없다.그러던 어느 날 메리가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방을 나와 처음으로 빨간 장미를 본다.그 순간 메리는 새로운 것..

왜 주장한 사람이 증명해야 할까

악마의 증명이 보여주는 입증 책임의 원칙어떤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궁금해한다. 정말 보물이 있을까.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질문을 바꾼다. “보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세요.”이 순간 대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보물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근거를 설명해야 할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새 증명해야 하는 책임이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만약 상대방이 증명하지 못한다면 보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악마의 증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입증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있다모..

없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악마의 증명이 던지는 가장 어려운 질문한 마을에 오래된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숲속 깊은 곳에는 밤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보이지 않는 악마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누구도 그 악마를 본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말했다."정말 악마가 있다면 증거를 보여 주세요."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악마가 없다는 걸 당신이 증명해 보세요."그 순간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숲을 아무리 뒤져도, 세상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없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증명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악마의 증명이라는 개념이 시작된다. 이 사고 실험은 악마의 존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왜 본질적으로 어려운지를 생각하게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