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실험 4

마감이 닥쳐야 움직이는 우리, 그 선택은 정말 내가 한 걸까

한국도로교통공단이 공개한 운전면허 적성검사·갱신 평균 대기시간은 10월 22분, 11월 29분, 12월 46분으로 연말로 갈수록 두 배 이상 길어졌습니다. 공단은 혼잡을 피해 연말 전에 방문하거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것을 당부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겁니다. 갱신 기한은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왜 하필 많은 사람이 '연말'이라는 같은 순간에 몰릴까요.마감이 멀리 있을 때 우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기한이 코앞에 닥치면 그제서야 움직이죠. 이 글은 그 흔한 습관을 두고,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마감에 쫓겨 내린 선택은 과연 '내가' 내린 선택일까요. ▶ 우리는 왜 멀리 있는 마감을 가볍게 여길까심리학에서는 미래의 가치를 실제보다 작게 평가하는 경향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편안..

기업이 언론사를 소유해도 괜찮을까

요즘 한 대형 신문사의 경영권을 두고 여러 기업이 인수 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금융, 식품, 의류, IT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회사들이 언론사를 사겠다고 나섰죠. 그런데 이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인수합병 뉴스로만 넘기기 어려운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기업이 언론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요? ▶ 언론은 왜 특별한 물건일까세상에는 사고팔 수 있는 것과 그렇게 다루면 어색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공장이나 부동산은 소유주가 바뀌어도 물건 자체의 성격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다릅니다. 언론의 핵심 자산은 건물이나 윤전기가 아니라 '독자가 그 보도를 믿는다'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신뢰라는 자산은,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 쉽게 흔들립니다. 같은 기사를 쓰더라도 '누가..

카테고리 없음 2026.09.28

완벽한 예측이 가능하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어떤 존재가 이 순간 우주의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것이 물리 법칙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이 존재는 1초 뒤에도, 100년 뒤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당신이 무엇을 먹을지, 어떤 결정을 내릴지까지도.19세기 수학자 라플라스는 이런 존재를 상상했다. 훗날 '라플라스의 악마'라 불리는 이 사고실험은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의 선택은 정말 우리의 것인가. 결정론이라는 세계관세상의 모든 사건이 이전 사건의 결과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결정론이라 부른다.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듯,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라온다. 이 인과의 사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우리의 뇌..

쌓인 모래는 언제부터 더미가 되는가

책상 위에 모래 한 알이 놓여 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모래 더미"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기에 한 알을 더 얹는다. 두 알이 되었다. 여전히 더미는 아니다. 이렇게 한 알씩 계속 더해 간다면, 어느 순간 그것은 '모래 더미'가 될 것이다.그렇다면 정확히 몇 번째 모래알에서 더미가 되는가.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2천 년 넘게 이어져 온 고대 그리스의 사고실험, 소리테스 역설(Sorites Paradox)이다. '소리테스'는 그리스어로 '더미(heap)'를 뜻한다. 한 알로는 만들 수 없는 모순역설의 구조는 이렇다.모래알 하나는 더미가 아니다.더미가 아닌 것에 모래알 하나를 더해도 여전히 더미가 아니다.따라서 아무리 모래알을 더해도 더미는 만들어지지 않는다.각 문장은 하나하나 보면 반박하기 어렵다. 특..